생각2016. 9. 13. 05:31



청전 스님 “종교, 타락할수록 군림하려 들어…양심 지키는 마음의 평화가 행복”




"뭣이 중한디?" 어떠한 말과 글이 유행함에 있어 언어 그 자체의 뜻과 힘도 중요하나, 그 언어가 통용되는 사회의 환경 또한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정의를 잃어버린 한국 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이 좋은 예가 될 수 있겠다.


경향 신문의 달라이라마 곁에서 삼십년을 수행하신 청전 스님 인터뷰를 읽으며 문득 "뭣이 중한디"라는 말이 떠올랐다.


"요즘 행복은 다른 사람 눈에는 멋져 보이는 '밖의 치장'이 잣대이더군요. 어리석은 욕망을 행복으로 압니다. 진정한 행복을 마음의 평화예요. 착하게 살면 됩니다. 세상이 타락했어도 끝까지 양심을 지키면 됩니다. 바른 동기가 없는 삶엔 행복이 이어지지 않아요."


청전 스님의 말이다. 무엇이 진정한 나인가? 무엇이 진정 행복한 삶인가? 무엇이 어떤 것인지 왜 중요한지 모르고서 그걸 어떻게 얻을 것이며, 가진다한들 제대로 쓸 수 있을리가 만무하다.


어리석은 욕망을 행복으로 알고, 양심적이고 선한 삶을 어리석다 생각하는 거꾸로 뒤바뀐 생각이 우리를.. 이 사회를 힘들게 하고 타락시키는 근본 원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이 유독 심하다고 생각하지만, 비단 한국 뿐만이 아니라 요즘 세상이 그렇다.


일제시대처럼 미쳐돌아가는 시대 속에서도 양심을 끝까지 지키고, 이 나라를 위해 온 삶을 바쳤던 안중근, 안창호같은 분들이 계셨기에 헬조선이라고 우리가 욕하는 이 나라가 그나마 나라다운 나라일 수가 있었다. 독재와 탄압의 시대 속에서 죽어간 이한열, 전태일과 같은 민주투사들이 있었기에 친일 청산조차 못한 이 나라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이 분들이 끝까지 양심을 지키고, 선한 것, 올바른 것을 위해 사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였다. 양심, 선, 정의가 나는 다른 것이라 생각치 않는다. 그리고 겉으로 보이기에 그 분들이 삶이 고난과 비극으로 보일지언정, 진정 그 분들이야말로 행복한 삶을 사셨다고 생각한다.


반면 자신의 부귀와 권력을 위해 나라를 판 이완용, 수많은 시민들을 희생시킨 전두환 등으로 대표할 수 있는 친일파와 독재세력들은 겉보기에는 부유하고 힘을 가진 모습이 개인 입장에선 성공적인 삶으로 생각될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내면은 황폐하고 오염된 불모지와 같고... 그들의 행위와 삶으로 인해 이 사회는 더욱 혼란과 고통을 견뎌야 했음을 확신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변절자, 양심을 버린 이들이 아직도 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고 본다.


어떻게 해야 우리 스스로 진정 행복하고, 이 사회를 올바르게 변화시켜나갈 수 있을까?


나는 개인의 진정한 행복과 행복한 사회는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실은 하나이며.. 이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선하고 양심을 지키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데서 시작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삶은 무저항의 삶이 아니라, 삶의 방식에서 여러 가지 차원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안중근 의사와 안창호 선생처럼... 수많은 민주투사처럼 옳고 바른 것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삶의 태도를 뜻할 것이다.


또한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고, 부단히 자신을 수양하고 발전시키는 것.. 봄에 씨앗을 뿌리는 것처럼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시간을 아끼고,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그러한 삶을 사는 방법일 것이다.


Posted by 청공(靑空)
일상2016. 2. 8. 06:22

오늘 독일에 와서 두번째로 미사를 참석하였다. 
스무살 이후로 성당에 가지 않았던 이유는 신앙이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성당에서의 강론과 성당 사람들의 모습에서 느끼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이델베르크대학 옆에 있는 예수회 성당을 나가고 있는데, 
처음 미사를 갔을 때는 코린토 1장 13절의 '사랑'에 관한 독서가 있었고...
오늘은 제1독서로 이사야서, 복음으로 루카복음이 강독되었다. 

이사야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제가 여기있습니다. 저를 보내주소서(Ich bin hier, sende mich)"라고 한 구절과...
베드로가 고기를 낚던 중에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그물을 던진 뒤에 만선을 이루고, 두려움 혹은 경외에 차 "선생님은 누구십니까?"라고 물어본 뒤, 예수님의 뒤를 따른 이야기가 인상이 깊었다. 

군대에서, 그리고 삶에서 내가 힘든 때마다 중고등학교 시절 성당에서 성가대를 하며 불렀던 구절이 나를 지탱해준다. 
"주여 나를 보내주소서, 당신이 아파하는 곳으로 주여 나를 보내주소서. 당신 손길 필요한 곳에.." 


독일 신부님의 강론에서 곧 있을 카니발(사육제)를 맞이하는 지금...
즐거움(Spaß)를 쫓지 말고, 기쁨(Freude)를 찾으라는 말이 있었다. 

즐거움은 외부에서 오지만, 기쁨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스스로 우러나오는 것이며...
그러한 마음에는 의심이 없고, 평화와 고요함이 함께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돌이켜보면 가벼운 것들, 밖에서 오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였고...
항상 깊은 것을 추구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남들이 모르도록, 혹은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면서 저당잡힌 삶을 살았다. 

깊어질 턱이 없으니, 때가 와도... "제가 여기 있습니다."하고 말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을리가 만무하고, 
더 나아가 "나를 보내주소서"라는 소명을 실천할 가능성이 있었겠는가? 

결국 내 자신이 이익이 되는 일이지만 일이 안 풀릴 때 기적을 바라는 삶을 살지 않았는가? 
노력도 하지 않았으면서, 스스로 바뀌지도 않았으면서 무엇을 얻으려 하였는가? 

스스로도 구원되지 못한 이가, 어떻게 남을 도울 수 있단 말인가? 


사육제가 지나면 사순절이 온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동안 단식을 하며 기도를 드렸고, 
부처님은 6년의 고행 뒤에 7일의 선정을 하신 끝에 깨달음을 얻으셨다. 

맑아지지도, 자유로워지지도 못하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버려야 할 때가 왔다. 


여기서도 버리지 못한다면 내 생애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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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청공(靑空)
생각2015. 10. 25. 06:31
해철이형 히든싱어를 보는데... 중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분이지만 참 내가 몰랐구나 싶다. 고스트 스테이션도 밤 늦게 공부하면서 즐겨 듣곤 했었는데...

어떻하면 녹음을 잘하는거냐고? 잘!

그리고 넥스트 새로운 보컬인 이현섭씨와 목소리에 관해서 얘기하면서 '목소리의 밀도'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이 사람은 참 깊은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얕디 얕은 내가 언제 그렇게 될까 싶지만, 난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Posted by 청공(靑空)
동양철학2015. 10. 18. 07:52

上士聞道, 勤而行之 (상사문도, 근이행지)

- 높은 단계의 학자는 도를 들으면 힘써 행하나,


中士聞道, 若存若亡 (중사문도, 약존약망)

- 중간 단계의 학자는 도를 들으면 반신반의하고, 


下士聞道, 大笑之 (하사문도, 대소지)

- 낮은 단계의 학자는 도를 듣고는 크게 비웃어 버린다. 


不笑不足以爲道 (불소부족이위도) 

- 그런 족속들이 웃지 않는다면 오히려 도라 할 수 없을 것이다. 


故建言有之 (고건언유지) 

-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明道若昧 (명도약매) 

- 밝은 길은 어두운 듯 하고, 


進道若退 (진도약퇴) 

- 나아가는 길은 물러나는 듯 하며, 


夷道若纇 (이도약뢰) 

- 평평한 길은 울퉁불퉁한 듯 하고, 


上德若谷 (상덕약곡) 

- 높은 덕은 골짜기와 같으며, 


大白若辱 (대백약욕)

- 큰 맑음은 더러운 듯 하고, 


廣德若不足 (광덕약부족)

- 넓은 덕은 모자란 듯 하며, 


建德若偸 (건덕약투)

- 건실한 덕은 게으른 듯 하며, 


質眞若渝 (질진약토)

- 참된 바탕은 변한 듯 하다. 


大方無隅 (대방무우)

- 큰 사각형은 모서리가 없고, 


大器免成 (대기면성)

- 큰 그릇은 완성되지 않으며, 


大音希聲 (대음희성)

- 큰 소리는 소리가 없고, 


大象無形 (대상무형)

- 큰 형상은 모습이 없다. 


道隱無名 (도은무명)

- 도는 감추어져 이름이 없으나, 


夫唯道, 善始且善成 (부유도 선시대선성)

- 오직 도만이 온당한 시작과 이룸을 할 수 있다. 


Posted by 청공(靑空)
글귀2015. 9. 18. 02:47


Luke: Ist die dunkle Seite stärker?

Yoda: Nein, nein, nein. Schneller, leichter, verführerischer. 

Luke: Aber wie kann ich die gute Seite von der Schlechten unterscheiden?

Yoda: Erkennen wird du es, wenn du Ruhe bewahrst. Frieden, passiv. 

Ein Jedi nutzt die Macht für das Wissen, zur Verteidigung, niemals  zum Angriff.


Yoda: Furcht ist der Pfad zur dunklen Seite.

Furtcht führt zu Wut

Wut führt zu Hass

Hass führt zu unsäglichem Le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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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청공(靑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