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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6.10 유시민: 누구나 다치면서 살아간다.
생각2015. 6. 10. 18:09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 말도 위로를 준다. 우리 현대사에서 아프지 않은 청춘은 없었다. 내 할아버지 세대는 청춘기에 나라를 빼앗겼다. 아버지 세대는 일제의 징용 징병과 한국전쟁을 겪었다. 내 세대는 박정희 전두환의 독재와 혹심한 노동 착취에 시달리면서 청춘을 보냈다. 어느 세대의 청년들도 망국과 전쟁과 독재에 대해 책임질 일을 한 적이 없었지만, 어떻게든 그 고통을 견디면서 의미 있고 존엄한 삶을 찾으려 분투했다.

오늘의 청년들 역시 자기 책임이 아닌 고통을 겪고 있다.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할 필요가 있다. 평생이 하루라면 20대 청년의 인생 시계는 이제 겨우 오전 9시에 왔을 뿐이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고 노력하면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다. 그러니 절대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마라.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면 아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위로의 힘은 거기까지다. 아버지가 아들의 아픔을 대신해줄 수는 없다. 아픔을 견디는 능력을 상속해줄 방법도 없다.

상처받지 않는 삶은 없다. 상처받지 않고 살아야 행복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다치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혀도 치명상을 입지 않을 내면의 힘, 상처받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 힘과 능력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는 의지에서 나온다. 그렇게 자신의 인격적 존엄과 인생의 품격을 지켜나가려고 분투하는 사람만이 타인의 위로를 받아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타인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다.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아포리아, 2013, 55-56쪽)


출처: 유시민 홈페이지 '자유인의 서재' (http://www.usimin.net/?p=1)


아버지는 아들의 아픔을 대신해줄 수 없고, 아픔을 견디는 능력을 상속해줄 방법도 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있고, 그 삶의 지평 위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운명자이다.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나 또한 걷는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위로이자 용기이다. 
그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꿋꿋한 나무가 될 수 있음을 나는 안다. 
믿는다라는 말은 안다라는 말 앞에서 초라해진다. 
보일 것 같다와 보인다라는 말의 차이와 같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 서 있고, 내 인생의 주인은 여기 있으며, 그 주인이 살아야 하는 삶 또한 여기 펼쳐져 있다. 
그 앞에서 돌아감이란 이제 다시는 없으리라. 

Posted by 청공(靑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