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2015. 6. 17. 23:26

내가 추구한 정치적 목표는 옳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정당을 혁신하고 지역 구도를 타파해 우리 정치를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국회의원 소선거구제와 결선 투표 없는 대통령 선거는 특정 지역을 배타적으로 장악한 거대 정당의 기득권을 철옹성처럼 보호하는 진입 장벽이다. 그 기득권 안에서 직업정치인들은 당원들을 지배하고 동원해 자기의 기득권을 지킨다. 이 정당들이 국민의 삶과 별 관계없는 문제로 끝없는 감정적 대결과 이전투구를 벌이는 한 농어민과 노동자, 영세상공인 등 사회적 약자들은 자기의 요구를 정치와 국가 운영에 반영하기 어렵다. 그러나 기득권을 누리는 거대 정당들이 스스로 진입장벽을 낮추어 새로운 도전자의 진입을 허용하는 선거제도 개혁을 할 리가 없다. 따라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강력한 제3의 정당을 만들어 기존의 지역주의 정당지형을 허물고 정책 경쟁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정치 시대를 열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정치인으로 성공하려고 하기보다는 낡은 정치 그 자체를 상대로 싸웠다. 내가 개혁당, 열린우리당, 참여당,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에 몸담은 것은 모두 국민참여형의 강력한 제3의 정당 없이는 정치 혁신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나는 이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내가 몸담았던 정당은 모두 사라지거나 좌초했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는 한국정치에 대한 내 진단과 처방이 옳다고 확신하지만 그것이 꼭 옳다는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옳다고 할지라도 다수의 국민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기성 정당을 비판하면서도 제3의 정당에 참여하기를 꺼렸다. 나와 뜻을 같이한 사람들도 의지는 드높았지만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신임을 얻기에는 역량이 부족했다. 정치에 뛰어든 것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올바른 목표를 추구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 일을 잘 해내지 못했다. 제대로 정치를 하려면 가치관이 뚜렷하고, 정책에 밝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은 기본일 뿐이다. 정치를 잘하려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 자기의 마음을 잘 다스려 다른 사람과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모아 함께 사회적 선을 이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옳은 일을 하려고 했지만 폭넓은 공감과 신뢰를 얻지 못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두가 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로서는 무엇보다 먼저 내 잘못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 핵심은 내 마음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왕왕 의견이 다른 사람에 대해 적대감을 느꼈다. 남이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기를 원하면서도 남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적게 했다. 그렇게 하면 소통과 협력을 이루어내기 어렵다. 어디 정치만 그렇겠는가? 사업을 하든, 기업이나 정부에서 조직 생활을 하든, 일을 잘 하려면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뜻이 아무리 옳아도 사람을 얻지 못하면 그 뜻을 이룰 수 없다.

지난 10년간 정치는 내 직업이었다. 내 일이었다. 그런데 글쓰기와 달리 정치는 내게 일인 동시에 놀이일 수는 없었다. 정치활동의 일상적 과정이 내게는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를 직업으로 삼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원래 직업이란 안정적 수입을 가져다주는 생업을 의미한다. 적어도 내게는 정치가 생업으로서 적합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면 왜 정치를 했는가? 내게 정치는 연대solidarity의 한 방법이었다. 연대는 아픔과 기쁨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 손을 잡고 사회적인 선과 미덕을 실현하는 행위이다. 그런 점에서 내게 정치는 스무 살에 야학교사를 한 것과 방식만 다를 뿐 본질은 같은 것이었다.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아포리아, 2013, 185-186쪽)


1. 

유시민 작가는 정치인의 기본소양으로 뚜렷한 가치관과 정책적 능력을 들었고, 
정치를 통해 사회적 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려 타인과의 효과적인 소통과 협력을 이뤄야 한다고 보았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다가선다면 상대방도 그만큼 멀어질 뿐이라는 통찰은
나에게도 유효하다. 아니, 모든 사람들에게 유효한 내용이 아닐까 싶다. 

어제 보았던 공부를 함에 있어 필요한 네 가지 덕목으로 충동심의 억제, 집중력, 자기절제, 목표의식이 차례로 제시되었을 때, 
어떤 일의 성사를 위해서는 반드시 가치의 층위와 그에 따른 선후관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무분별하게 다가가서는 우연에 의지하는 것 밖에 되질 않는다. 
모래성을 짓고자 할 때도 아래 토대를 튼튼히 하고, 위로 갈수록 가늘게 만듦은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한다. 


Posted by 청공(靑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