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2017.06.12 05:57


  1. Euer Herz lasse sich nicht verwirren. Glaubt an Gott und glaubt an mich! 
  2. Im Haus meines Vaters gibt es viele Wohnungen.Wenn es nicht so wäre, hätte ich euch dann gesagt: Ich gehe, um einen Platz für euch vorzubereiten?
  3. Wenn ich gegangen bin und einen Platz für euch vorbereitet habe, komme ich wieder und werde euch zu mir holen, damit auch ihr dort seid, wo ich bin. 
  4. Und wohin ich gehe - den Weg dorthin kennt ihr.
  5. Thomas sagte zu ihm: Herr, wir wissen nicht, wohin du gehst. Wie sollen wir dann den Weg kennen?
  6. Jesus sagte zu ihm: Ich bin der Weg und die Wahrheit und das Leben; niemand kommt zum Vater außer durch mich. 
  7. Wenn ihr mcih erkannt habt, werdet ihr auch meinen Vater erkennen. Schon jetzt kennt ihr ihn und habt ihn gesehen. 
  8. Philippus sagte zu ihm: Herr, zeig uns den Vater; das genügt uns. 
  9. Jesus antwortete ihm: Schon so lange bin ich bei euch und du hast mich nicht erkannt, Philippus? Wer mich gesehen hat, hat den Vater gesehen. Wie kannst du sagen: Zeig uns den Vater?
  10. Glaubst du nicht, dass ich im Vater bin und dass der Vater in mir ist? Die Worte, die ich zu euch sage, habe ich nicht aus mir selbst. Der Vater, der in mir bleibt, vollbringt seine Werke.
  11. Glaubt mir doch, dass ich im Vater bin und dass der Vater in mir ist; wenn nicht, glaubt wenigstens aufgrund der Werke!
  12. Amen, amen, ich sage euch: Wer an mich glaubt, auch vollbringen und er wird noch größere vollbringen, denn ich gehe zum Vater.
  13. Alles, um was ihr in meinem Namen bittet, werde ich tum, damit der Vater im Sohn verherrlicht wird. 
  14. Wenn ihr mich um etwas in meinem Namen bittet, werde ich es t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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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청공(靑空)
생각2017.02.05 03:02

子曰 "參乎! 吾道, 一以貫之." 
(자왈 삼호 오도 일이관지)

공자께 말씀하셨다. "삼아! 나의 도는 하나로써 꿰었느니라."


曾子曰 "唯." 
(증자왈유)

이에 증자가 "예"하고 답하였다. 


子出, 門人問曰 "何謂也?"
(자출문인문왈 하위야)

공자께서 나가시자 문인들이 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증자왈 부자지도 충서이이의)

증자가 말하였다. "선생님의 도(道)는 충(忠)과 서(恕)일 뿐입니다."



세계는 무엇인가? 인간의 마음의 근본이 무엇인가?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위에 예시된 논어의 구절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있어서 이보다 간결하고 옳은 답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을 대하고, 어떠한 일을 함에 있어 
진실된 마음을 다하고(忠)
타인의 입장을 역지사지, 즉 타인의 입장을 헤아려 공감한다면(恕)
항상 자신이 임할 수 있는 최선의 자세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이성 혹은 이론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부단히 칼로 자르듯, 줄로 가는 듯, 정으로 쪼는 듯, 숫돌로 광을 내는 듯 다스림으로써
마치 맑은 호수와 거울처럼 고요히 할 때 저절로 몸짓 하나, 말 한마디를 통해서도 드러나는 경지일 것이다. 

그 길에서는 자신의 마음에 삿됨(私)이 자리잡는 것을 항상 주의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삿된 마음으로 인하여 진실된 마음에서 멀어지고..
결국 자기가 자신을 속이고, 자기가 자신을 망하는 길로 이끌게 되기 때문이다. 

삿된 마음은 수양이 깊어질수록 그 모습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자연스러워진다. 
따라서 밝게 보는 지혜가 없이는 가랑비에 옷이 젖듯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물들어 
삿됨이 원래 내 몸인양 달라붙어 버리고는 결코 다시는 바른 길로 돌아서지 못하게 된다. 


본디 사람이란 짐승이기 때문에 내 몸에 편한 것을 찾아가게 마련이니, 
사사로움이란 그러한 본성에 순(順)하는 법이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짐승에게 없는 생각이 있다. 
이로 말미암아 짐승에게는 없는, 오직 사람에게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병폐가 생긴다. 

동물은 자기 배를 채우고 나면 더 이상의 욕심을 내지 않고 안주하기에 자연을 거스르지 않지만, 
사람은 생각이 자기 자신을 속이기 때문에 그 삿됨이 끝간 데 없이 자라날 수가 있다. 
그리고 사람마다 제각각 이러한 욕심이 키우다보면, 서로 싸우고 뺏고 해치게 된다. 
같은 사회 안에서 살아야 함에도 서로 믿을 수 없고, 반목하게 되고, 결국 파멸로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사람에게는 이를 막을 수 있는 힘 또한 있다. 
공자가 말하는 서(恕), 자기 자신을 비추어 남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공감능력이다.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능력만큼이나, 공감능력은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하다. 
개인의 이기심-삿된 마음(私)-이 생각으로 인해 끝없이 커지는 것을, 
저 사람도 나처럼 고통받지 않고 행복하길 원한다는 것을 앎으로서 막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감은 사람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초가 된다. 

(恕)는 사사로운 마음(私)이 커지는 것을 막아내고 내려놓을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삿된 마음을 버리고 항상 진실한 마음(忠)으로 항상 살아갈 수 있다면, 
사람은 본래 어진 마음(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짐승은 다른 개체를 사랑하는 마음이 본능에서 일어나기에 순수하지만 그 한계가 뚜렷하다. 
허나 사람이 생각과 공감을 발판삼아 본능을 뛰어넘어 어진 마음(仁)을 갖게 된다면,
그와 같은 인간의 사랑하는 마음은 그 경계가 끝이 없고, 그 깊이가 잴 수 없다. 


그러나 반대로 사람이 사사로움(私)을 끝까지 따르면 사람은 짐승으로 태어났으나 짐승보다 못한 자가 된다. 
삿된 생각은 영혼을 황폐하게 한다. 사사로움을 취하다보면 타인을 헤아리는 마음(恕) 또한 사라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성공에 도취하여 중독되는 CEO들이 뇌내 호르몬 분비의 균형이 깨져 공감능력을 상실해가는 것이 바로 그 예이다. 
공감능력을 잃는 것, 이는 곧 타인과의 연결고리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자폐증이라면 자기 만의 세계에 갇히기에 다른 이에게 딱히 피해를 줄 일도, 이유도 없다. 
그러나 사사로움에 취해 잘못된 길을 가는 이들의 마음은 외부와의 심리적 유대는 단절되었으나, 
자신의 욕심은 끊임없이 외부세계로 뻗어져 나간다. 이로 인해 결국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사람은 한없이 잔인해질 수 있다. 
따라서 그가 가지고자 하는 권력과 물질이 크면 클수록 자신과 남에게 끼치는 해가 이루말할 수 없이 커진다고 할 수 있다.  

잘못된 마음씀으로 인해 변해버린 사람의 뇌는 돌이킬 수 없다. 
정신의 변화가 이미 물질의 변화를 초래했기 때문에 불가역적이다.  
결국 다른 무수한 존재들과의 연결고리를 잃어버린 그의 영혼은 더이상 깊은 행복과 평화를 얻을 수 없고, 
보잘것 없는 얕은 차원의 욕구충족과 쾌락만이 그의 악행의 댓가로 주어질 뿐이다. 

이 짧은 인생, 자신과 남들에게 하지 못할 일만 하다가 죽음 앞에 놓여 초라하고 비루하게 사라져가게 된다. 
아무리 그 겉이 번지르르 한 들 죽음 앞에서 그 의미를 잃는 모든 물질적인 것들은 그를 위로하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사람은 항상 삿됨(私)을 경계해야 하는 법이고, 
자기자신을 수양하고, 바른 가치를 삶에서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항시 충(忠)과 서(恕)로 귀결되는 덕목을 벗 삼아 이같은 사람의 본성을 역(逆)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법이다. 

한 마리 짐승으로 태어나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길은 
언제나 거꾸로 거슬러가는 굽이치는 가파른 길이기에
그 길은 항상 험난하고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최상승의 지혜를 깨우친 사람에게는 오직 그 길 밖에 가야한 길이 없을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더 깊고, 더 넓어지는 것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바른 길이기 때문이다. 
대붕역풍비(大鵬逆風飛) 생어역수영(生魚逆水泳)이란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연유로 바르게 살고자 하는 이는 한없는 어진 마음(仁)에 이르기 위해 살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일생은 자기 내면에 도사리는 삿됨(私)이라는 본성의 극복과, 
세상사람들의 삿됨(私)으로 비롯된 외부세계의 불의와 그로 인한 고통을 없애는 일에 바쳐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여정에서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을 이긴 연후에 외부의 경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먼저 내부의 적을 없애고, 단결해야 하는 이치와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아득히 멀어보이는 길의 끝은 언제 다다를 수 있을까?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삿되고 거짓된 삶이 아닌 바르고 진실된 삶을 살게 되는 날은 언제 올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 피안으로 다다라야 한다. 
그 길 밖에는 가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남과 살아감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지만, 
우리가 어떻게, 무엇을 위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는 지혜가 있다면 명약관화하다. 
예수와 부처, 소크라테스와 공자가 평생을 사람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깨우쳤던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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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청공(靑空)
동양철학2017.01.30 05:51


어릴 적 철학을 공부해보겠다고 도덕경을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남은 것이 없습니다. 
그 책을 깊이 이해하여 그 생각을 내 삶 속에서 실천하거나, 체화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적어도 그것을 갖고 남들과 논하며 이해 못한 것이 있지 않나? 잘못 이해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닌가 점검을 했어야 했습니다. 

조금 더 성숙한 뒤에 논어모임을 꾸려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이들과 나누어보니...
시간이 흘러도 전체의 윤곽이 희미해질지언정 분명히 남는 바가 있었습니다. 

혼자서 하는 공부는 제대로 된 궤도에 오르기 전에 위태로운 법이기에..
동양철학을 전공하지도, 소양이 깊다고는 할 수 없지만 배움을 위해서 도덕경을 공부하며
배운 바를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최진석 교수의 '도덕경'을 읽고, 이를 바탕으로 원래 텍스트와 더불어 제가 이해한 바를 풀 생각입니다. 


1.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니요, 
이름 지어질 수 있는 이름은 진정한 이름이 아니다."

 
2. 
無, 天地之始. 有, 萬物之母. 
무, 천지지시. 유, 만물지모. 

"무(無)는 천지의 시작을 가리키고, 
유(有)는 만물의 어머니를 가리킨다."


3.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徼. 
고상무욕이관기묘. 상유욕이관기요. 

"이런 고로 항시 무를 통해 오묘함이 드러내려 하고, 
유를 통해서는 경계를 나타내려 함이다."


4.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차량자, 동출이이명, 동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이 둘은 같이 나와 이름을 달리하니, 같이 있음을 현묘하다 한다. 
현묘하고 현묘하구나, 이 것이 온갖 미묘함이 들고나는 문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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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청공(靑空)
생각2016.10.23 22:05
산 무당도 아니라 죽은 무당의 딸과 그 딸이 대한민국 정부와과 대학이라는 상아탑의 모든 룰을 무너뜨리고, 농락하였음에도... 오직 이화여대의 학생들만 들고 일어나 자신들이 주인임을 밝혔다. 대한민국의 주인들은 아직도 별 일 없이 산다.

몇몇 깨어있는 선하고 정의로운 이들만 외로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갈 뿐이다. 이 나라는 그랬다. 일제의 찬탈에도 그랬고, 반공과 독재의 억압 속에서도 그랬다. 몇몇 소수에게만 모든 걸 맡겨두고, 나는 먹고 살기 바쁘다. 옳은 걸 알아도 어떻게 사람이 바르게만 살겠냐... 하며 외면하고 산다.

자기의 몫이고, 자기의 삶에 관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별 일 없이 산다. 제발 .... 제발.... 이완용도... 박정희도... 두 번 다시 겪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백년이 지나고 오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일제시대 참혹함을 겪은 소녀들은 백발의 노인이 되어서도 국가의 배신을 겪고 있고, 오십년 전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로 나섰던 젊은이는 노인이 되어서 국가의 손에 목숨을 잃고 그 몸마저 빼앗길 위기에 놓여있다.

그래도 그저 남 일이다. 아이들이 물에 빠져 죽건... 위안부 할머니들이 억울함 속에 하나둘 세상을 떠나건... 국가의 손에 국민이 죽어나가건.... 남 일이다. 국회의원들아.. 문재인아 열심히 해라... 이 나라는 왜 이 꼴이냐.... 그렇게 훈수두곤 별 일없이 산다.

만약 바로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일 중에 하나라도 다른 국가에서 터졌더라면.... 그 정권은 끝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아니... 끝이다. 그런데 이 나라는 그대로 이 모양 이 꼴이다.

왜냐? 주인이 시원찮아서 이 꼴이다. 자기 집 초가삼간이 다 타도 그 곁에 앉아 불구경이나 하고 있는 바보 천치들이 태반이라서 그렇다.

일제도, 독재도 그대로 청산되지 않은 채 남아있으니... 결국 우리가 맞이해야 할 미래는 그와 비슷한 그 무엇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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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청공(靑空)
생각2016.09.13 05:31



청전 스님 “종교, 타락할수록 군림하려 들어…양심 지키는 마음의 평화가 행복”




"뭣이 중한디?" 어떠한 말과 글이 유행함에 있어 언어 그 자체의 뜻과 힘도 중요하나, 그 언어가 통용되는 사회의 환경 또한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정의를 잃어버린 한국 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이 좋은 예가 될 수 있겠다.


경향 신문의 달라이라마 곁에서 삼십년을 수행하신 청전 스님 인터뷰를 읽으며 문득 "뭣이 중한디"라는 말이 떠올랐다.


"요즘 행복은 다른 사람 눈에는 멋져 보이는 '밖의 치장'이 잣대이더군요. 어리석은 욕망을 행복으로 압니다. 진정한 행복을 마음의 평화예요. 착하게 살면 됩니다. 세상이 타락했어도 끝까지 양심을 지키면 됩니다. 바른 동기가 없는 삶엔 행복이 이어지지 않아요."


청전 스님의 말이다. 무엇이 진정한 나인가? 무엇이 진정 행복한 삶인가? 무엇이 어떤 것인지 왜 중요한지 모르고서 그걸 어떻게 얻을 것이며, 가진다한들 제대로 쓸 수 있을리가 만무하다.


어리석은 욕망을 행복으로 알고, 양심적이고 선한 삶을 어리석다 생각하는 거꾸로 뒤바뀐 생각이 우리를.. 이 사회를 힘들게 하고 타락시키는 근본 원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이 유독 심하다고 생각하지만, 비단 한국 뿐만이 아니라 요즘 세상이 그렇다.


일제시대처럼 미쳐돌아가는 시대 속에서도 양심을 끝까지 지키고, 이 나라를 위해 온 삶을 바쳤던 안중근, 안창호같은 분들이 계셨기에 헬조선이라고 우리가 욕하는 이 나라가 그나마 나라다운 나라일 수가 있었다. 독재와 탄압의 시대 속에서 죽어간 이한열, 전태일과 같은 민주투사들이 있었기에 친일 청산조차 못한 이 나라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이 분들이 끝까지 양심을 지키고, 선한 것, 올바른 것을 위해 사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였다. 양심, 선, 정의가 나는 다른 것이라 생각치 않는다. 그리고 겉으로 보이기에 그 분들이 삶이 고난과 비극으로 보일지언정, 진정 그 분들이야말로 행복한 삶을 사셨다고 생각한다.


반면 자신의 부귀와 권력을 위해 나라를 판 이완용, 수많은 시민들을 희생시킨 전두환 등으로 대표할 수 있는 친일파와 독재세력들은 겉보기에는 부유하고 힘을 가진 모습이 개인 입장에선 성공적인 삶으로 생각될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내면은 황폐하고 오염된 불모지와 같고... 그들의 행위와 삶으로 인해 이 사회는 더욱 혼란과 고통을 견뎌야 했음을 확신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변절자, 양심을 버린 이들이 아직도 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고 본다.


어떻게 해야 우리 스스로 진정 행복하고, 이 사회를 올바르게 변화시켜나갈 수 있을까?


나는 개인의 진정한 행복과 행복한 사회는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실은 하나이며.. 이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선하고 양심을 지키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데서 시작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삶은 무저항의 삶이 아니라, 삶의 방식에서 여러 가지 차원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안중근 의사와 안창호 선생처럼... 수많은 민주투사처럼 옳고 바른 것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삶의 태도를 뜻할 것이다.


또한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고, 부단히 자신을 수양하고 발전시키는 것.. 봄에 씨앗을 뿌리는 것처럼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시간을 아끼고,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그러한 삶을 사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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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청공(靑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