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2021. 3. 23. 04:32

후진(後秦) 구자국(龜茲國)삼장 구마라집(鳩摩羅什) 한역
김진철 번역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처음 설법을 하시어 아야교진여(阿若橋陳如)를 제도하시고 최후의 설법으로 수발타라(須跋陀羅)를 제도하셨다. 제도할 자를 다 제도하여 마치시고는 사라쌍수(娑羅雙樹) 사이에서 장차 열반에 드시려고 하셨다. 이때 밤은 고요하고 아무 소리가 없었으므로 모든 제자들을 위하여 법의 주요한 점을 간략히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이여, 내가 입멸한 후에 마땅히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계율)를 존중하고 진귀하게 여겨 공경해야 하리니 어둠 속에서 광명을 만나고 가난한 사람이 보배를 얻은 것과 같이 하라. 마땅히 이것을 알면 이것이 바로 너희들의 큰 스승이며 내가 세상에 있더라도 이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청정한 계를 지닌 자는 판매하고 무역하지 말고 집과 논ㆍ밭을 마련하여 두지 말고 사람이나 노비나 짐승을 기르지 말며, 일체 씨 뿌리고 재배하는 것과 모든 재물과 보배를 다 멀리하기를 불구덩이 피하듯 하고, 풀과 나무를 베거나 땅을 파고 토지를 개간하지 말고, 탕약을 짓거나 길흉(吉凶)을 점치거나 우러러 별을 보아 참과 이지러짐을 관측하거나 역수(曆數)로 운수를 헤아리고 맞히는 일들은 응하지 말아야 한다. 몸을 소중히 하여 제 때에 맞춰 먹으며, 청정하게 스스로 생활하고 세상일에 참여하여 명을 이어가지 말며, 주술을 부리거나 신선의 약을 구하지 말며, 귀한 이와 인연 맺기를 좋아하여 친한 이를 업신여기는 일은 모두 하지 말라.

마땅히 스스로 마음을 단정히 하여 바른 생각으로 남을 제도하고 자기의 잘못을 감추거나 기이한 것을 나타내어 중생을 미혹시키지 말며, 네 가지 공양(음식ㆍ의복ㆍ침구ㆍ의약)에 있어서 분수에 만족할 줄 알아서 공양물을 쌓아두지 말아야 하느니라. 이것은 계율을 지니는 모양을 간략히 말한 것으로 계는 곧 바르고 순한 해탈의 근본이라 바라제목차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계를 의지하여 모든 선정과 고통을 없애는 지혜가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비구들아, 마땅히 청정한 계를 지녀서 범하여 무너뜨리지 말라.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청정한 계를 지니면 곧 좋은 법을 가질 수 있겠지만 만약 청정한 계가 없으면 모든 좋은 공덕이 생길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계는 제일 안온한 공덕이 머무는 곳이다.

너희 비구들이여, 계에 머물렀거든 마땅히 5근(根:감관)을 제어하여 방일하게 하여 5욕에 빠져들지 말게 하라. 비유하면 소치는 사람이 막대기를 쥐고 살펴서 소가 멋대로 날뛰어 남의 밭에 곡식의 싹을 범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만일 5근을 제멋대로 놓아두면 5욕은 그 끝을 몰라서 도저히 제어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사나운 말과 같아서 고삐를 제어하지 않으면 장차 사람을 끌어다가 구덩이에 떨어뜨릴 것이다. 강도의 해를 당하는 것은 그 고통이 일생에 그치지만 5근 도적의 화는 그 재앙이 여러 생에 미치어 해가 되므로 매우 중하니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까닭으로 지혜 있는 이는 제어하여 그것을 따르지 말고 그것을 도적을 붙잡듯 잘 붙잡아야 하며 제멋대로 방일하지 않게 해야 한다. 가령 그것을 놓아두더라도 또한 모두 머지않아 닳아 없어지게 될 것이다. 이 5근은 마음이 주인이 되기 때문에 너희들은 마땅히 마음을 잘 제어하라.

이 마음이 두렵기는 독사나 흉악한 짐승이나 인명을 해치고 재물을 겁탈하는 도적보다 심하니 큰 불길이 치솟는 것으로도 그것을 비유할 수 없느니라. 또한 이리저리 가벼이 날뛰면서 꿀만 보고 구덩이를 보지 못하는 것과 같으며, 비유하면 고삐 풀린 미친 코끼리 같고, 원숭이가 나무에서 이리 뛰고 저리 날뛰는 것과 같아서 막고 제어하기 어렵다. 그러니 마땅히 빨리 그것을 꺾어서 방일하지 못하게 해야 하느니라. 마음을 멋대로 놓아두면 남의 착한 일을 상실하게 하지만 그것을 제어하여 한 곳에 두면 무슨 일이고 처리하지 못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여,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여 네 마음을 꺾어 굴복시켜야 할 것이다.

너희 비구들이여, 모든 음식을 받음에 마땅히 약을 먹듯이 하여 좋고 나쁜 것을 따라 더 먹고 덜 먹지 말고 얻어서 몸을 지탱하여 굶주림과 목마름이나 없앨 것이다. 마치 꿀벌이 꽃을 찾을 때 다만 그 맛을 취할 뿐 빛과 향기는 손상하지 않는 것처럼 비구도 그러하여 남의 공양을 받음에 자기의 괴로움만 없앨 것이요, 많은 것을 구하여 그 선한 마음을 무너뜨리지 말라. 비유하면 지혜 있는 이는 소가 어느 정도의 무게를 감당할 것인가를 헤아려 지나치게 무거운 짐을 지워 그 힘을 다하게 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너희 비구들이여, 낮에는 부지런한 마음으로 선법(善法)을 닦아 익혀 제 때를 잃지 말며 초저녁과 새벽에도 그만두지 말고 한밤중에도 경을 외워서 스스로 쉴 것이요, 수면의 인연으로 일생을 아무 소득 없이 보내지 말라. 마땅히 무상(無常)의 불길이 모든 세간을 태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여 빨리 자신을 제도하기를 구하여 잠자지 말라. 모든 번뇌의 도적이 사람을 죽이려고 엿보는 것이 원수보다 심하니 어찌 편안히 잠들어 스스로 놀라 깨지 않겠는가?

번뇌의 독사가 너의 마음에 잠자고 있는 것은 비유하면 검은 까치독사가 너의 방에서 잠자고 있는 것과 같나니, 마땅히 지계의 갈고리로 빨리 물리쳐 없애버려 수면의 독사를 쫓아낸 뒤에야 곧 편안히 잠들 수 있을 것이요, 독사가 나가지도 않았는데 잠드는 것은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니라. 부끄러움의 옷이 모든 장엄 가운데 제일이다. 부끄러움은 쇠갈고리와 같아 능히 사람의 나쁜 잘못을 제어하니 그러므로 비구여, 마땅히 항상 부끄러워하여 잠시도 버리지 말라. 만약 부끄러워함을 여의면 모든 공덕을 잃나니, 부끄러움이 있는 사람은 곧 선한 법이 있지만, 부끄러움이 없는 자는 짐승들과 다름이 없느니라. 

너희 비구들이여, 만일 어떤 사람이 와서 너의 사지를 마디마디 가르거든 마땅히 스스로 마음을 걷어들여 성내거나 원한을 품지 말고, 또한 마땅히 입을 지켜서 나쁜 말을 하지 말라. 만약 성내는 마음을 제멋대로 놓아두면 스스로 도를 방해하고 공덕의 이익을 잃게 되나니, 참음의 공덕은 계를 지키고 고행을 하는 것도 이에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니라. 능히 인욕할 수 있는 사람을 일러 힘이 있는 대인(大人)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남이 욕하여 꾸짖는 독을 감로수를 마시듯 기꺼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도에 들어간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냄의 해는 능히 모든 선한 법을 깨뜨리고 좋은 명예를 무너뜨려 금생에서나 내생에서나 남이 보기 싫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성내는 마음은 맹렬한 불길보다 더한 것이니, 마땅히 항상 막고 지켜 마음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공덕을 겁탈하는 도적은 성냄보다 더한 것이 없느니라. 속인은 도를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욕심을 누리고 살기에 자기를 제어하는 법이 없으므로 성을 내더라도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출가하여 도를 행하는 욕심 없는 사람으로서 성냄을 품는 것은 매우 옳지 못한 것이니, 비유하면 맑은 구름 가운데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치는 것과 같으니 맞지 않는 일이니라. 

너희 비구들이여, 마땅히 그대의 머리를 만져보라. 이미 장식한 좋은 옷을 버리고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걸식으로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다. 자기의 모습이 이러함을 보고 만약 교만이 일어나거든 마땅히 빨리 없애버려야 하느니라. 교만을 기르는 것은 세속 사람으로서도 오히려 마땅한 일이 아니거늘 하물며 출가하여 불문에 들어간 사람으로서 해탈을 위하여 자신을 낮추고 걸식을 행하는 데 있어서 마땅하겠는가?

너희 비구들이여, 아첨하고 거짓된 마음은 도와 서로 어긋나는 것이니 그러므로 마땅히 그 마음을 질박하고 정직하게 하라. 마땅히 알아야 한다. 아첨과 바르지 못함은 그저 남을 속이는 일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니 불문에 들어온 사람은 이럴 수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마음을 단정히 하여 질박과 정직으로 근본을 삼아야 한다. 비구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이익을 구함이 많기 때문에 고뇌 또한 많지만, 욕심이 적은 사람은 구함도 없고 욕심도 없으므로 이런 근심이 없는 것이다. 다만 욕심을 적게 하더라도 오히려 닦아 익히는 것이 마땅하거늘 하물며 욕심을 적게 하는 것이 능히 모든 공덕을 냄에 있어서이겠는가? 욕심이 적은 사람은 아첨과 거짓으로써 남의 마음을 사려고 하지 않으며, 또한 다시 모든 근(根)에 이끌림을 당하지 않느니라. 욕심을 적게 하여 수행하는 이는 마음이 평안하여 근심과 두려움이 없으며 하는 일마다 여유가 있어 항상 부족함이 없나니 욕심이 적은 이는 곧 열반을 지니고 있음이라, 이것을 일러 욕심이 적다고 하느니라.

너희 비구들이여, 만약 모든 고뇌를 벗어나고자 하거든 마땅히 만족할 줄 아는 것을 관해야 하느니라. 만족할 줄 아는 법이 곧 부유하고 즐겁고 안온한 곳이니라.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맨땅 위에 누워 있을지라도 안락하고, 만족할 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비록 천당에 있더라도 뜻에 맞지 않을 것이요,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록 부유하더라도 가난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가난하더라도 부유하느니라. 만족할 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5욕(欲)에 이끌려 다니니, 만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 연민의 대상이 된다. 이것을 일러 만족할 줄 안다고 하느니라.

너희 비구들이여, 만일 적정(寂靜) 무위(無爲)의 안락을 구하고자 하거든 마땅히 시끄러움을 떠나 홀로 한가한 곳에 있어야 하느니라. 고요한 곳에 있는 사람은 제석천과 모든 하늘이 함께 공경하고 존중하는 바가 된다. 그러므로 마땅히 마음속의 모든 생각과 바깥의 여러 대중을 떠나서 한가한 곳에 홀로 처하여 괴로움의 근본을 생각해 없애야 할 것이다. 대중을 좋아하는 사람은 곧 여러 가지 괴로움을 받나니, 비유하면 큰 나무에 많은 새들이 모여 앉으면 나무가 마르고 꺾여서 부러지는 근심이 있는 것과 같다. 세간에 얽매이고 집착하면 여러 가지 괴로움에 빠지리니, 비유하면 늙은 코끼리가 늪에 빠져서 스스로 나오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것을 일러 멀리 떠난다[遠離]고 하느니라.

너희 비구들이여, 부지런히 정진한다면 일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라. 비유하면 작은 물방울이라도 쉬지 않고 흐르면 능히 돌을 뚫는 것과 같다. 만약 수행자의 마음이 자주자주 게을러져 공부를 폐한다면 그것은 마치 나무를 비벼 불을 내고자 할 때 나무가 뜨겁기도 전에 쉬는 것과 같아 아무리 불을 얻고자 해도 불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이것을 일러 정진이라 하느니라.

너희 비구들이여, 선지식을 구하고 선호조(善護助)를 구하려면 잊지 않고 생각하라. 만약 잊지 않고 생각하면 모든 번뇌의 도적이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항상 마땅히 생각을 걷어들여 마음에 두어야 한다. 만약 바른 생각을 잃어버리면 모든 공덕을 잃어버릴 것이요, 만약 생각하는 힘이 굳고 굳세면 비록 5욕(欲)의 도적 속에 들어가더라도 해침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비유하면 갑옷을 입고 적진에 들어감에 두려울 것이 없는 것과 같다. 이것을 일러 잊지 않고 생각함[不忘念]이라 하느니라.

너희 비구들이여, 만약 마음을 가다듬어 흩어지지 않게 하려면 마음을 곧 선정에 두어야 할 것이니, 마음이 정(定)에 있기 때문에 능히 세간의 생멸법의 모양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항상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여 모든 정을 닦아 익혀야 한다. 만약 정을 얻은 사람이면 마음이 흩어지지 않을 것이다. 비유하면 물을 아끼는 집안은 둑이나 못을 잘 다스리는 것과 같은 것이니, 수행하는 자도 또한 그러해서 지혜의 물이 새어 없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일러 선정[定]이라 하느니라.

너희 비구들이여, 만약 지혜가 있으면 탐내고 집착함이 없을 것이니, 항상 스스로 반성하여 살펴서 잃지 않게 할 것이니라. 이것이 곧 나의 법 가운데 능히 해탈을 얻는 것이거니와, 만약 그렇지 못한 사람은 이미 도인도 아니며 또 속인도 아니라 무엇이라 이를 수 없느니라. 진실한 지혜는 곧 늙고 병들고 죽는 바다를 건너는 견고한 배요, 또한 이 무명(無明)의 어둠 속의 큰 등불이며 모든 병든 자의 좋은 약이요, 번뇌의 나무를 베어내는 날카로운 도끼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듣고 생각하고 닦는 지혜로써 자신을 더욱 길러야 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지혜의 빛을 지녔다면 비록 천안(天眼)이 없더라도 이 사람은 밝게 보는 사람이니, 이것을 일러 지혜(智慧)라 하느니라.

너희 비구들이여, 만약 갖가지 희론(戱論)을 하면 마음이 곧 산란해지나니 다시 출가하더라도 해탈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여, 마땅히 빨리 산란한 마음과 희론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만약 너희들이 적멸(寂滅)의 즐거움을 얻고자 하거든 오직 걸핏하면 희론하는 버릇을 없애야 한다. 이것을 일러서 희론하지 않음[不戱論]이라 하느니라.

너희 비구들이여, 모든 공덕에 있어서 항상 마땅히 한마음으로 모든 방일함 버리기를 원수와 도적을 멀리 하듯이 하라. 크게 자비하신 세존께서는 이롭게 하고자 하신 바를 모두 구경(究竟)으로써 하셨으니, 너희들은 다만 부지런히 그것을 수행해야 하느니라. 혹 산간이나 빈 못가에 있거나, 혹 나무 밑에서나 또는 고요한 방에 한가히 있을 때라도 받은 법을 생각해서 잊어버리지 말고 항상 마땅히 스스로 힘써서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헛되이 죽으면 뒤에 근심과 뉘우침을 부를 것이다. 나는 훌륭한 의사와 같아 병을 알아 약을 일러주는 것인데 먹고 안 먹는 것은 의사의 잘못이 아니요, 또 나는 착한 길잡이와 같아 좋은 길로 사람을 인도하되 내 말을 듣고서도 그 길을 따라가지 않더라도 그것은 길잡이의 잘못이 아니니라. 너희들은, 만약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의 4제에 대하여 의문이 있거든 빨리 물어라. 의심을 품은 채 해결을 구하지 않는 이는 없는가?”

이때 세존께서 이와 같이 세 번 말씀하셨으나 묻는 사람이 없었다. 왜냐하면 아무도 의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아누루타가 대중의 마음을 관찰하고는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달을 뜨겁게 하고 해를 차게 할 수는 있어도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4제(諦)는 변하게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고제(苦諦)는 진실로 괴로움이라 즐거움이 될 수 없으며, 집제(集諦)는 이 괴로움의 참된 원인이라 다시 다른 원인이 없으며, 만약 괴로움을 소멸시킬 수 있다면 그 원인도 곧 없어질 수 있는 것이라 원인이 없어지므로 결과도 없어질 것이니, 괴로움을 없애는 도제(道諦)는 진실로 참된 도요, 다시 다른 도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비구들은 4제에 대하여 결단코 의심이 없는 것입니다.

이때 대중 가운데에서 의심을 분별하지 못한 사람은 부처님께서 멸도(滅度)하심을 보고 모두 슬픈 마음을 품고 있으며, 처음 법에 들어온 이라도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곧 모두 다 제도를 얻었으니, 비유하면 밤에 번갯불이 번쩍하는 것을 보고 곧 길을 알 수 있는 것과 같으며, 만약 번뇌를 아주 끊어 이미 고해(苦海)를 건넌 사람들은 그저 생각하기를 ‘세존께서 멸도하심이 어찌 이렇게 빠른가?’라고 하고 있습니다.”

아누루타가 비록 이렇게 모든 사람이 다 4성제(聖諦)의 뜻을 밝게 안다고 말했지만 세존께서는 이 여러 대중으로 하여금 다 견고함을 얻게 하기 위하여 대비심으로 다시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이여, 근심하고 괴로운 마음을 품지 말라. 내가 만약 한 겁(劫) 동안 이 세상에 머문다 하더라도 마침내는 마땅히 멸할 것이요, 끝내 만나고 헤어지지 않을 수는 없느니라.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 것은 법에 다 갖추어져 있으니 비록 내가 오래 머물러도 다시 더 이익될 것이 없느니라. 마땅히 제도할 만한 자는 천상이나 인간이나 이미 다 제도하였고, 아직 제도하지 못한 자도 이미 다 제도할 인연을 지었느니라. 지금부터는 나의 모든 제자들이 더욱더 쉬지 않고 이것을 행하면 바로 여래의 법신(法身)이 항상 있어서 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세상은 무상하므로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는 것이니 근심하지 말라.

세간도 이와 같은 것이니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여 빨리 해탈을 구해서 지혜의 광명으로 모든 어리석음과 어두움을 없애버려라. 세상은 진실로 위태롭고 무르고 약하여 단단하고 굳은 것이 없느니라. 내가 이제 멸도하는 것은 나쁜 병을 없애는 것과 같아 이것은 마땅히 버려야 할 나쁜 물건이거늘 거짓으로 몸이라 일러 생로병사의 큰 바다에 빠져 있으니, 어찌 지혜 있는 이가 이것을 없애기를 원수나 도적을 죽이는 것처럼 기뻐하지 않겠는가? 너희 비구들이여, 항상 마땅히 일심으로 부지런히 번뇌를 벗어나는 길을 구하라. 이 세상의 모든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법은 다 헐어 무너질 불안한 모양이니, 너희들은 그만 중지하고 다시 말하지 말라. 때는 장차 지나가려 하고 나는 이제 멸도하고자 하노라. 이것이 바로 나의 최후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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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2017. 6. 12. 05:57


  1. Euer Herz lasse sich nicht verwirren. Glaubt an Gott und glaubt an mich! 
  2. Im Haus meines Vaters gibt es viele Wohnungen.Wenn es nicht so wäre, hätte ich euch dann gesagt: Ich gehe, um einen Platz für euch vorzubereiten?
  3. Wenn ich gegangen bin und einen Platz für euch vorbereitet habe, komme ich wieder und werde euch zu mir holen, damit auch ihr dort seid, wo ich bin. 
  4. Und wohin ich gehe - den Weg dorthin kennt ihr.
  5. Thomas sagte zu ihm: Herr, wir wissen nicht, wohin du gehst. Wie sollen wir dann den Weg kennen?
  6. Jesus sagte zu ihm: Ich bin der Weg und die Wahrheit und das Leben; niemand kommt zum Vater außer durch mich. 
  7. Wenn ihr mcih erkannt habt, werdet ihr auch meinen Vater erkennen. Schon jetzt kennt ihr ihn und habt ihn gesehen. 
  8. Philippus sagte zu ihm: Herr, zeig uns den Vater; das genügt uns. 
  9. Jesus antwortete ihm: Schon so lange bin ich bei euch und du hast mich nicht erkannt, Philippus? Wer mich gesehen hat, hat den Vater gesehen. Wie kannst du sagen: Zeig uns den Vater?
  10. Glaubst du nicht, dass ich im Vater bin und dass der Vater in mir ist? Die Worte, die ich zu euch sage, habe ich nicht aus mir selbst. Der Vater, der in mir bleibt, vollbringt seine Werke.
  11. Glaubt mir doch, dass ich im Vater bin und dass der Vater in mir ist; wenn nicht, glaubt wenigstens aufgrund der Werke!
  12. Amen, amen, ich sage euch: Wer an mich glaubt, auch vollbringen und er wird noch größere vollbringen, denn ich gehe zum Vater.
  13. Alles, um was ihr in meinem Namen bittet, werde ich tum, damit der Vater im Sohn verherrlicht wird. 
  14. Wenn ihr mich um etwas in meinem Namen bittet, werde ich es t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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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2017. 2. 5. 03:02

子曰 "參乎! 吾道, 一以貫之." 
(자왈 삼호 오도 일이관지)

공자께 말씀하셨다. "삼아! 나의 도는 하나로써 꿰었느니라."


曾子曰 "唯." 
(증자왈유)

이에 증자가 "예"하고 답하였다. 


子出, 門人問曰 "何謂也?"
(자출문인문왈 하위야)

공자께서 나가시자 문인들이 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증자왈 부자지도 충서이이의)

증자가 말하였다. "선생님의 도(道)는 충(忠)과 서(恕)일 뿐입니다."



세계는 무엇인가? 인간의 마음의 근본이 무엇인가?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위에 예시된 논어의 구절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있어서 이보다 간결하고 옳은 답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을 대하고, 어떠한 일을 함에 있어 
진실된 마음을 다하고(忠)
타인의 입장을 역지사지, 즉 타인의 입장을 헤아려 공감한다면(恕)
항상 자신이 임할 수 있는 최선의 자세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이성 혹은 이론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부단히 칼로 자르듯, 줄로 가는 듯, 정으로 쪼는 듯, 숫돌로 광을 내는 듯 다스림으로써
마치 맑은 호수와 거울처럼 고요히 할 때 저절로 몸짓 하나, 말 한마디를 통해서도 드러나는 경지일 것이다. 

그 길에서는 자신의 마음에 삿됨(私)이 자리잡는 것을 항상 주의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삿된 마음으로 인하여 진실된 마음에서 멀어지고..
결국 자기가 자신을 속이고, 자기가 자신을 망하는 길로 이끌게 되기 때문이다. 

삿된 마음은 수양이 깊어질수록 그 모습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자연스러워진다. 
따라서 밝게 보는 지혜가 없이는 가랑비에 옷이 젖듯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물들어 
삿됨이 원래 내 몸인양 달라붙어 버리고는 결코 다시는 바른 길로 돌아서지 못하게 된다. 


본디 사람이란 짐승이기 때문에 내 몸에 편한 것을 찾아가게 마련이니, 
사사로움이란 그러한 본성에 순(順)하는 법이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짐승에게 없는 생각이 있다. 
이로 말미암아 짐승에게는 없는, 오직 사람에게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병폐가 생긴다. 

동물은 자기 배를 채우고 나면 더 이상의 욕심을 내지 않고 안주하기에 자연을 거스르지 않지만, 
사람은 생각이 자기 자신을 속이기 때문에 그 삿됨이 끝간 데 없이 자라날 수가 있다. 
그리고 사람마다 제각각 이러한 욕심이 키우다보면, 서로 싸우고 뺏고 해치게 된다. 
같은 사회 안에서 살아야 함에도 서로 믿을 수 없고, 반목하게 되고, 결국 파멸로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사람에게는 이를 막을 수 있는 힘 또한 있다. 
공자가 말하는 서(恕), 자기 자신을 비추어 남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공감능력이다.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능력만큼이나, 공감능력은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하다. 
개인의 이기심-삿된 마음(私)-이 생각으로 인해 끝없이 커지는 것을, 
저 사람도 나처럼 고통받지 않고 행복하길 원한다는 것을 앎으로서 막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감은 사람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초가 된다. 

(恕)는 사사로운 마음(私)이 커지는 것을 막아내고 내려놓을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삿된 마음을 버리고 항상 진실한 마음(忠)으로 항상 살아갈 수 있다면, 
사람은 본래 어진 마음(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짐승은 다른 개체를 사랑하는 마음이 본능에서 일어나기에 순수하지만 그 한계가 뚜렷하다. 
허나 사람이 생각과 공감을 발판삼아 본능을 뛰어넘어 어진 마음(仁)을 갖게 된다면,
그와 같은 인간의 사랑하는 마음은 그 경계가 끝이 없고, 그 깊이가 잴 수 없다. 


그러나 반대로 사람이 사사로움(私)을 끝까지 따르면 사람은 짐승으로 태어났으나 짐승보다 못한 자가 된다. 
삿된 생각은 영혼을 황폐하게 한다. 사사로움을 취하다보면 타인을 헤아리는 마음(恕) 또한 사라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성공에 도취하여 중독되는 CEO들이 뇌내 호르몬 분비의 균형이 깨져 공감능력을 상실해가는 것이 바로 그 예이다. 
공감능력을 잃는 것, 이는 곧 타인과의 연결고리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자폐증이라면 자기 만의 세계에 갇히기에 다른 이에게 딱히 피해를 줄 일도, 이유도 없다. 
그러나 사사로움에 취해 잘못된 길을 가는 이들의 마음은 외부와의 심리적 유대는 단절되었으나, 
자신의 욕심은 끊임없이 외부세계로 뻗어져 나간다. 이로 인해 결국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사람은 한없이 잔인해질 수 있다. 
따라서 그가 가지고자 하는 권력과 물질이 크면 클수록 자신과 남에게 끼치는 해가 이루말할 수 없이 커진다고 할 수 있다.  

잘못된 마음씀으로 인해 변해버린 사람의 뇌는 돌이킬 수 없다. 
정신의 변화가 이미 물질의 변화를 초래했기 때문에 불가역적이다.  
결국 다른 무수한 존재들과의 연결고리를 잃어버린 그의 영혼은 더이상 깊은 행복과 평화를 얻을 수 없고, 
보잘것 없는 얕은 차원의 욕구충족과 쾌락만이 그의 악행의 댓가로 주어질 뿐이다. 

이 짧은 인생, 자신과 남들에게 하지 못할 일만 하다가 죽음 앞에 놓여 초라하고 비루하게 사라져가게 된다. 
아무리 그 겉이 번지르르 한 들 죽음 앞에서 그 의미를 잃는 모든 물질적인 것들은 그를 위로하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사람은 항상 삿됨(私)을 경계해야 하는 법이고, 
자기자신을 수양하고, 바른 가치를 삶에서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항시 충(忠)과 서(恕)로 귀결되는 덕목을 벗 삼아 이같은 사람의 본성을 역(逆)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법이다. 

한 마리 짐승으로 태어나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길은 
언제나 거꾸로 거슬러가는 굽이치는 가파른 길이기에
그 길은 항상 험난하고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최상승의 지혜를 깨우친 사람에게는 오직 그 길 밖에 가야한 길이 없을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더 깊고, 더 넓어지는 것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바른 길이기 때문이다. 
대붕역풍비(大鵬逆風飛) 생어역수영(生魚逆水泳)이란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연유로 바르게 살고자 하는 이는 한없는 어진 마음(仁)에 이르기 위해 살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일생은 자기 내면에 도사리는 삿됨(私)이라는 본성의 극복과, 
세상사람들의 삿됨(私)으로 비롯된 외부세계의 불의와 그로 인한 고통을 없애는 일에 바쳐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여정에서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을 이긴 연후에 외부의 경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먼저 내부의 적을 없애고, 단결해야 하는 이치와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아득히 멀어보이는 길의 끝은 언제 다다를 수 있을까?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삿되고 거짓된 삶이 아닌 바르고 진실된 삶을 살게 되는 날은 언제 올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 피안으로 다다라야 한다. 
그 길 밖에는 가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남과 살아감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지만, 
우리가 어떻게, 무엇을 위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는 지혜가 있다면 명약관화하다. 
예수와 부처, 소크라테스와 공자가 평생을 사람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깨우쳤던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Posted by 청공(靑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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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2017. 1. 30. 05:51


어릴 적 철학을 공부해보겠다고 도덕경을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남은 것이 없습니다. 
그 책을 깊이 이해하여 그 생각을 내 삶 속에서 실천하거나, 체화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적어도 그것을 갖고 남들과 논하며 이해 못한 것이 있지 않나? 잘못 이해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닌가 점검을 했어야 했습니다. 

조금 더 성숙한 뒤에 논어모임을 꾸려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이들과 나누어보니...
시간이 흘러도 전체의 윤곽이 희미해질지언정 분명히 남는 바가 있었습니다. 

혼자서 하는 공부는 제대로 된 궤도에 오르기 전에 위태로운 법이기에..
동양철학을 전공하지도, 소양이 깊다고는 할 수 없지만 배움을 위해서 도덕경을 공부하며
배운 바를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최진석 교수의 '도덕경'을 읽고, 이를 바탕으로 원래 텍스트와 더불어 제가 이해한 바를 풀 생각입니다. 


1.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니요, 
이름 지어질 수 있는 이름은 진정한 이름이 아니다."

 
2. 
無, 天地之始. 有, 萬物之母. 
무, 천지지시. 유, 만물지모. 

"무(無)는 천지의 시작을 가리키고, 
유(有)는 만물의 어머니를 가리킨다."


3.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徼. 
고상무욕이관기묘. 상유욕이관기요. 

"이런 고로 항시 무를 통해 오묘함이 드러내려 하고, 
유를 통해서는 경계를 나타내려 함이다."


4.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차량자, 동출이이명, 동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이 둘은 같이 나와 이름을 달리하니, 같이 있음을 현묘하다 한다. 
현묘하고 현묘하구나, 이 것이 온갖 미묘함이 들고나는 문이로다."


Posted by 청공(靑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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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2016. 10. 23. 22:05
산 무당도 아니라 죽은 무당의 딸과 그 딸이 대한민국 정부와과 대학이라는 상아탑의 모든 룰을 무너뜨리고, 농락하였음에도... 오직 이화여대의 학생들만 들고 일어나 자신들이 주인임을 밝혔다. 대한민국의 주인들은 아직도 별 일 없이 산다.

몇몇 깨어있는 선하고 정의로운 이들만 외로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갈 뿐이다. 이 나라는 그랬다. 일제의 찬탈에도 그랬고, 반공과 독재의 억압 속에서도 그랬다. 몇몇 소수에게만 모든 걸 맡겨두고, 나는 먹고 살기 바쁘다. 옳은 걸 알아도 어떻게 사람이 바르게만 살겠냐... 하며 외면하고 산다.

자기의 몫이고, 자기의 삶에 관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별 일 없이 산다. 제발 .... 제발.... 이완용도... 박정희도... 두 번 다시 겪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백년이 지나고 오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일제시대 참혹함을 겪은 소녀들은 백발의 노인이 되어서도 국가의 배신을 겪고 있고, 오십년 전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로 나섰던 젊은이는 노인이 되어서 국가의 손에 목숨을 잃고 그 몸마저 빼앗길 위기에 놓여있다.

그래도 그저 남 일이다. 아이들이 물에 빠져 죽건... 위안부 할머니들이 억울함 속에 하나둘 세상을 떠나건... 국가의 손에 국민이 죽어나가건.... 남 일이다. 국회의원들아.. 문재인아 열심히 해라... 이 나라는 왜 이 꼴이냐.... 그렇게 훈수두곤 별 일없이 산다.

만약 바로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일 중에 하나라도 다른 국가에서 터졌더라면.... 그 정권은 끝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아니... 끝이다. 그런데 이 나라는 그대로 이 모양 이 꼴이다.

왜냐? 주인이 시원찮아서 이 꼴이다. 자기 집 초가삼간이 다 타도 그 곁에 앉아 불구경이나 하고 있는 바보 천치들이 태반이라서 그렇다.

일제도, 독재도 그대로 청산되지 않은 채 남아있으니... 결국 우리가 맞이해야 할 미래는 그와 비슷한 그 무엇이리라....


Posted by 청공(靑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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