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2013. 12. 18. 23:08


일요일 강화도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에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이 책을 빌려주겠다고 한 분이 말씀하셨는데.. 나는 통 잊어버리고 있던 것을 목요일 방청을 하러 갔는데 들고 오셨다. 

다른 것을 떠나서 그렇게 마음을 써주셨다는 것이 참 감사했다. 세심하고 맑은 마음이 줄 수 있는 감동이란 분명 향기가 나는 선행이라고 생각한다. 


을 다 읽은 후, 바로 들었던 느낌은 지금 이 때 내가 읽어서 참 도움이 되었다는 느낌이었다. 아마 스무살 언저리에 읽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들.. 몇 번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사람들과 친분을 나눈 스물여덟(이제는 스물아홉)이라는 나이에 만났기에 책은 특별했다. 


책 중간중간에서 느껴지는 우아해보이려는 모습, 일본소설 특유의 과도한 감성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책을 관통하는 이야기는 만족스러웠다. 사람들간의 케미스트리, 그리고 억눌렀던 감정과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 다른 이들이 보는 자신의 모습.. 쓰쿠루(作る)가 색채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이들은 사실 쓰쿠루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 이후의 삶에서도 쓰쿠루는 컴플렉스적이고, 극도로 내성적인 모습을 보였다.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힘든 모습이었다.


한편 욕망을 가지고 그것을 드러내지 못하고 감추는 모습, 혼자서 그것을 고뇌하는 모습은 공감이 되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억누르다보면 어느새 욕망은 기괴하게 뒤틀리기도 하는 것이니까... 혹은 소심한 난쟁이처럼 숨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시로와 구로, 아오와 아카, 그리고 쓰쿠루 사이에서 생겨났던 그들의 관계도 상당히 매력적인 주제였다. 케미스트리란 무작위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요소를 가지고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케미스트리일 것이다. 어떤 때와 사람과 장소가 아니면 다시는 재현될 수 없는 것.. '생명'과도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무슨 케미스트리가 있었을까? 2012년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순간 질문을 던져본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인상깊은 구절을 남긴다.



  에리는 말했다. "도쿄로 돌아가면 그 사람한테 곧바로 모든 걸 고백하도록 해. 그게 네가 할 일이야. 마음을 여는 것은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다줘. 단, 그 사람이 어떤 남자와 같이 가는 것을 보았다는 말은 절대로 해서는 안 돼. 그것만은 마음속에 그냥 간직해 둬. 여자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 있어. 하지만 그것 말고는 감추지 말고 솔직히 말하는 게 좋아."

  "난 두려워.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해서, 또는 무슨 잘못된 말을 해서 모든 것이 무너지고 그냥 허공으로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게."

  에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역을 만드는 일하고 마찬가지야. 그게, 예를 들어 아주 중요한 의미나 목적이 있는 것이라면 약간의 잘못으로 전부 망쳐져 버리거나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는 일은 절대로 없어. 설령 완전하지 않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역은 완성되어야 해. 그렇지? 역이 없으면 전차는 거기 멈출 수 없으니까.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맞이할 수도 없으니까. 만일 뭔가 잘못된 부분이 발견되면 필요에 따라 나중에 고치면 되는거야. 먼저 역을 만들어. 그 여자를 위한 특별한 역을. 볼일이 없어도 전차가 저도 모르게 멈추고 싶어 할 만한 역을." 



  "있잖아, 쓰쿠루, 넌 그 여자를 잡아야 해. 어떤 일이 있어도, 난 그렇게 생각해. 지금 그 여자를 놓쳐 버리면 다시는 아무도 가질 수 없을지도 몰라." 

  에리는 말했다. 맞는 말일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라를 손에 넣어야 한다. 그것도 그는 안다. 그러나 말할 것도 없이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의 마음과 또 다른 한 사람의 마음 사이의 문제인 것이다. 주어야 할 것이 있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 있다. 



 

Posted by 청공(靑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