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가 깨침을 얻자 읊은 싯귀 :
오, 놀라운지고 ―
내가 장작을 패네 !
내가 샘물을 긷네 !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샘에서 물을 긷는다든지 장작을 팬다든지 하는 그런 범상한 활동을 보고 <놀라와할> 까닭이 있을 리 없다. 깨달음 뒤에도 막상 달라진 것은 없다. 매사가 매양 한가지다. 다만, 인제는 너의 마음이 경이로 가들 찰 따름이다. 나무는 역시 나무다. 사람들은 그저 여전히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너도 마찬가지다. 너라는 사람도 무엇 하나 달라진 것 없이 이어지고 있다. 혹은 괄괄하거나 혹은 느긋하거나 성결도 여전할 것이다. 혹은 영리하거나 혹은 우둔하거나 재주도 그대로일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 : 이제 너는 이 모든 것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 모든 것에서 한결 초연해졌다. 그리고 너의 마음이 경이에 찼다.
경이감 ― 그것이 관조(관상)의 요체다.
관조는 황홀경(탈혼)과 다르다. 황홀경은 물러남(이탈)을 낳는 데 비하여, 깨달은 관조자는 여전히 장작을 패고 샘물을 긷는다.
관조는 심미, 곧 아름다움을 알아봄과도 다르다. 무슨 그림이나 저녁놀의 아름다움을 느끼면 기쁨(심미적 희열)이 솟는 반면에, 관조는 경탄을 낳는다 ― 혹은 저녁놀이거나 혹은 돌멩이 하나거나 혹은 무엇을 바라보든.
이것이 동심의 특권이다. 어린이야말로 자주 탄복해 마지않는 상태에 있다.
그래서 어린이에게는 하늘 나라가 절로 제집인 것이다.
출처: Anthony de Mello S.J. (1983) 정한교 역. THE SONG OF THE BIRD(종교박람회). 분도출판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 소리를 들었느냐? (0) | 2013.10.22 |
---|---|
꼬마 물고기 (0) | 2013.10.22 |
참 <영성> (0) | 2013.10.19 |
나귀 타고 나귀 찾기 (0) | 2013.10.19 |
왕궁의 비둘기 (0) | 2013.10.16 |